글 / 가연작성일 / 2020.06.16 아침 6시 반, 아이가 저를 흔들어 깨웁니다. "엄마, 아침이야, 제발 좀 일어나" 아, 딱 하루만 늦잠 좀 자보면 좋겠다. 엄마가 제일 힘든 순간이 바로 이럴 때 입니다. 엄마는 꼭 깨있어야 한답니다. 핫케이크로 아침을 하고, 조금 일찍 집을 나섭니다. 오래도록 마음에만 담아 왔던 엄마 모임을 하기 위해서에요. 나는 딸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또 평화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한 사람인데, 엄마인 나로 만나는 사람들과는 육아 이상의 얘기를 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반대로 평화를 걱정하는 나로 만나는 사람들과는 엄마인 나의 이야기는 미뤄놓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올해 초 모모에 합류한 후 제일 먼저 떠올랐던 프로젝트가 바로 피스빌더이자 엄마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엄마모임' 을 구상하면서 꼭 오셨으면 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어쩜, 이렇게 모여주셨네요. 라니, 선미, 프카, 서로서로 그리고 저 가연. 각자 소개를 나누고 시작해야 하는데, 앉자마자 할말이 너무 많아요. 자자. 차근차근 시작해봅시다. 음료는 모두 샹그리아로 통일이요! / 애들이 몇 살이에요?: 엄마들이 친해지려면 엄마들의 말문을 활짝 여는 마법 질문은 바로 '애들이 몇 살이에요? 애들이 몇 명이에요?' 일거에요. 오늘은 아예 대놓고 써놓기로 했어요. 둘러앉은 테이블 위에는 전지를 깔아놓고 메모지로 사용하기로 했어요 (프카)“저는 큰아이가 중1이고, 아이 셋이 있어요. 아침부터 야채카레 해주고 오느라고..”(가연)“저도 애가 셋이네요. 10살, 6살, 2살이에요” (라니)“저는 남자 애 하나고, 7살이에요. 남편이 이틀 동안 바빴으니, 오늘은 여유롭게 있다가 가려고요.”(서로서로)“저는 아직 애기가 어려요. 16개월이고요. 애기가 열이 났는데, 다행히 좀 나아져서 나왔어요.”(선미)“저는 여자애 하나 있고 세살이에요. 가인아 인사해.” / 쉴 틈 없는 하루하루: 잠깐만 멍 때리고 있고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소개를 해볼게요. 자기 이름과 이번 주의 관심사를 키워드로 써보고 돌아가면서 나눴어요. (프카) “이제 아이들은 따로 손 갈 게 없어요. 밥만 해주면, 셋이서 주루룩 앉아서 온라인 학습하느라 바빠요. 첫 애가 요즘 사춘기라 자꾸 문을 닫고 들어가는데, 그 바람에 둘째도 방에 갇혀 지내죠. 제가 호기심이 많아요. 그래서 파도 심고, 딸기도 심고 그랬는데, 딸기는 2주가 지나도 왜 나올 생각을 안하죠? 화분 가꾸기랑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선미)“저는 요즈음 아주 많은 역할을 해요. 남편이랑 아빠가 자영업을 하셨는데, 코로나로 사정이 어려워져서 제가 돕고 있어요. 온라인으로 식품 사업을 시작했거든요. 아버지랑 사무실에 둘이 있는데 제가 진과장이에요. 낮 시간에는 사무실에 있다가 저녁 6시 즈음에 집에 와요. 저녁 먹고 아이를 9시에 재우면 같이 잠들어요. 그러고는 새벽 2-3시에 깨서 제 공부를 해요. 사실 미국에 대학원 박사과정을 갈 준비를 하는데, 논문도 써야 하고, 새벽이 아니면 집중할 시간이 없어요.” (라니)“저는 피스모모 평화교육 진행자로 살았던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교육이 다 취소되다 보니 요즘은 아이랑 시간을 보내는 게 제 일이 됐어요. 어린이집을 안 보내고 있거든요. 머리도 복잡하고 해서 차라리 새로운 걸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이에요. 무언가 만들면서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면 어떨까요?” (서로서로)“저는 초등 교사에요. 매일 출근하고 있어서 오후 3시까지는 교사로 지내고요, 그 이후부터 저녁시간은 주로 제가 아이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남편도 평화에 관심이 있어서 저녁에 교육을 듣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야근하는 남편이랑 사는거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 (가연)“저는 이번주에 모모에서 평화대학을 진행하느라고 두 번이나 출근했어요. 평소에는 아이들이랑 지내느라 바쁘죠. 평화에 관심이 있어요.” / 우리는 누굴까?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사람?: 이거면서 저거인 우리 오늘의 이야기 툴은 정체성 파이(Identity Pie)에요. 방학시간표 그린다고 생각하시면 쉬워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무슨 말로 소개하는지가 우리 정체성이 되겠죠. 어느 정체성이 나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지 피자 조각 나누듯이 나누면서 써주시면 됩니다. (가연)“ 저는 매번 비슷하게 그리게 되는데요, 각 정체성이 차지하는 크기만 달라지는 것 같아요. 피스빌더가 가장 큰 정체성이고, 엄마/아내, 딸/며느리, 30대, 여성, 등이 있네요. 무언가 만들어가는 사람은 여기서 처음 써봐요. 예의상 기독교인도 포함했어요.” (서로서로)”저는 교사와 엄마가 가장 큰 정체성이고, 아내, 친구, 가족 등으로 나눴어요. 교사 안에는 여러 정체성이 포함되는데 요즈음은 선생님, 돌봄 교사, 학습지 제작사, 동료 등이 얽혀있는 것 같아요.” (선미)”저는 하루에 쓰는 시간에 따라 나눠봤어요. 일이 제일 많고, 공부, 엄마, 부인, 딸/친구/신앙인 등이 그 다음이네요. 남편과 저 둘 다 바빠서인지 요즈음 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아침에 밥 먹을 때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라니)”요즘 아이와 계속 같이 있다보니 엄마 정체성이 가장 커요. 교육자로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교육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평화, 운동가, 딸, 아내 등이 있어요. 동생이랑 떨어져 살다보니 누나 정체성은 1년에 한 번 일깨워지는 정도네요. 내 자신이라는 정체성이 사이에 껴 있는데 앞으로 이 부분이 더 커졌으면 하고 경계를 유연하게 그렸어요.” (프카)”내가 누구일까?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해요. 아이 셋을 독박육아로 길렀고,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봐도 사실 문제 없을 정도로 의리로 맺은 관계가 됐어요. 그러다보니 내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자격증을 하나 따려고 공부 중인데, 그래서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뚜렷하고요. 힘들 때 의지하는 것이 종교라서 종교인의 정체성을 다른 분들보다는 크게 그린 것 같아요.” / 우리에게 가장 큰 정체성은 엄마: 아내 정체성은... '엄마'라는 정체성은 우리 모두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데다가 평생 안고 가야하는 정체성인 것 같아요. 각자가 그린 정체성 파이를 잘라다가 모아봤더니, 엄마 정체성은 원 하나를 그리고도 남네요. 반면에 아내/부인 정체성은 어쩌죠? 남편들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운 정도에요. (라니)“ 남편이 알아서 잘 하는 편이라, 아내로서 저의 역할은 저녁 먹을 시간에 들어오면 밥 차려주는 정도인 것 같아요.” (프카)“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주말 부부여도 상관 없는 관계에요. 남편이 저녁에 꼬박꼬박 들어오면 밥 챙겨주는 일이 더 번거롭게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애들이 어린 것도 아니고..” / 엄마이자 일하는 사람/피스빌더/교육자로 살기는 너무 어렵다: 정체성끼리 부딪히는 순간들. 솔직히 엄마들은 일을 나가기 전에, 애들 어린이집 스케쥴, 하원하면 돌봐줄 사람 스케쥴 모두 조정하고, 친정 엄마가 아이를 못 봐주신다고 하면 시댁에 전화해서 하루만 좀 봐달라고 부탁해요. 모든 스케쥴이 잘 맞아야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죠. (서로서로) “그렇게 애를 써도 당일에 애가 아프면 모두 도루묵이죠. 근데 아빠들은 가끔 아빠라는 것을 까먹나봐요. “나 오늘 회식있어” 하고 통보하면 끝이잖아요. 우리는 허락을 구하는 수준인데.. " (라니)“제가 애 키우면서 운동도 못하고 집에 있어서 그런지 살이 붙었어요. 그래서 남편 앞에서 ‘아, 운동하고 싶다’ 했더니, ‘운동 해, 산책이라도 해’ 이러더라고요. 그러면 애는 누가보고? 제가 운동이라도 하려면 누가 애를 봐야된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는 거죠” / 엄마이자 평화를 가르치는 사람: 배워본 적 없는 평화를 아이에게 가르치려니.. 아이들에게 평화를 어떻게 가르치세요? 엄마이자 평화를 고민하는 사람으로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평화를 가르치려니 이게 맞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또 가끔은 우리가 평화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이 아닌지도 걱정이 되고요. (라니)“저는 은근슬쩍 말을 보태는 방법을 써요. 아이가 결혼은 남자랑 여자랑 하는거야? 물어보면, 아니 근데 사랑하는 사람이랑 다 결혼할 수 있는거 아닌가? 남자끼리 결혼하는 사람도 있어. 라고 말해줘요.” (가연)“제 아이가 비행기를 아주 좋아해요. 최근에 책방에 갔다가 ‘진짜진짜 재미있는 전투기책’을 사달래서 사줬어요. 나도 이참에 무기 공부를 해보자 하고요. 그런데, 그냥 재밌게 읽을수만은 없어서 ‘전투기는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거야. 미사일 쏘면 어디로 가니? 아파트 같은 데 떨어져서 사람들이 죽는거야’라고 설명해 줬어요. 하루는 유치원에 이 책을 들고 가길래, 유치원 선생님께 ‘선생님, 아이들과 이 책 읽을 때, 전쟁에서 사용되는 거라고 꼭 얘기해 주세요’라고 했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더라고요” (프카)“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느 정도 통제가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아서 유투브 찾아보는 나이다 보니 엄마가 가르치지 않는 것을 배울 때가 많아요. 알아서 콘텐츠를 골라보는 눈을 길러줘야 될 것 같아요.” (서로서로)“저도 2년 전인가, 담임을 맡았는데 여름이라 물총놀이를 해야했어요. 그 때가 모모에서 교육을 막 받고 난 다음이었는데, 물총도 다 총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학생들보고 ‘우리 사람한테는 쏘지 말고, 하늘에다가 쏘자’ 했어요. “ (선미)“저는 여자아이에게 몸의 소중함을 잘 가르쳐 주고 싶은데, 그것도 어렵더라고요. 남자 성기를 일컫는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쓰지만, 여자 성기를 일컫는 말은 도대체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아요. 솔직히 어떤 용어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프카)“저는 여자아이 남자아이 모두 자신의 성기는 ‘보물’이라고 가르쳐줬어요. 내 몸에서 소중한 부분이니까요.” / 시댁, 배우자, 출산 등의 이야기를 다 하려면: 향후 5년 간 나눌 이야기 주제 다 나왔다 갈등 전환을 배우고 배운 것 들을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이 바로 시댁이에요. 시댁과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공책 한 권을 꽉 채웠어요. 갈등 분석하기 아주 좋은 주제에요. 또, 출산은 엄마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어디서 제대로 말할 기회는 없어요. 출산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철저히 제한된 영역이에요. 공식적인 자리를 빌어 이런 경이로운 경험을 공유할 자리도 있으면 좋겠네요. / 피스모모 엄마모임, 오:와우(o:WOW)?! (뜸)“ 엇, 모모 안에 엄마가 있네요.” 이럴수가, MOMO에서 마지막 O를 가리면 MOM(엄마)가 되는 마법? 엄마와 모모의 공통 분모를 찾게 됐습니다. 우리 모임의 이름을 ‘맘모’로 해야하나 생각하는 순간, MOMO 글씨를 거꾸로 보고 있던 서로서로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MOMO를 거꾸로 보니 WOW인데요?” 그렇네요, 우리의 모임은 모모를 그리고 평화를 다른 시각에서 봤을 때 생겨납니다. 모모의 스펠링을 그대로 살려서 ‘오:와우(o:WOW)’를 모임 이름의 후보로 올렸어요. 모임의 이름은 차차 정해보려 합니다.앞으로 이야기할 거리도 가득 담아놨으니, 평화를 생각하는 엄마들, 우리 천천히 오래 만나요 첫모임을 열어주신 라니, 선미, 프카, 서로서로, 가연 / 피스모모 "엄마"모임은피스모모 회원 중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첫모임을 시작했습니다.여성 양육자들이 놓인 특별한 사회적 맥락을 공유하며 서로 힘이 되고,여성 양육자들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자리로서 모임을 시작하고자 했어요.물론, 다른 다양한 정체성과 더불어 삶의 많은 시간을양육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회원 분들에게 열려있답니다.앞으로 양육자이자 피스빌더로서의 정체성이 교차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찾아가고자 해요. / 가연은피스모모에서 평화저널리즘 팀장피스모모 평화/교육 연구소(TEPI)에서 연구위원을 맡고 있습니다어쩌다 아이 셋의 엄마가 된 피스빌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