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김가연/2021.10.06 햇살이 따뜻했던 토요일 오후.9월의 o:WOW 모임은 걷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안국동 자락의 '다락방 구구'에서 열렸습니다. o:WOW는 코로나 방역 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모였습니다:) 이번 모임은 각자가 경험한 임신, 출산, 유산, 임신중단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안젤라 가브스의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다"를 읽었는데요. 페미니스트로서 임신과 관련된 경험들이 당황스러웠던 저자는 '임신을 과학과 문화'로 살펴보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임신과 관련된 경험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내 몸이 왜 이렇게 변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넘어갔던 경우가 많지요. 병원에서 '관리' 혹은 '지시'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새로운 선택지를 생각하거나, 주체적으로 내 몸을 위한 결정을 내린 경험은 드문 것 같아요.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눠보았어요. 임신, 출산, 임신중단, 유산에 대한 나의 경험 나누기 도움이 필요했던 지점, 변화해야 할 지점 발견하기 이러면 좋겠다, 아이디어 나누기 임신/출산 여정 그리기 각자의 경험을 정리하고, 서로 나눌 지점을 모아보기 위해서, 임신과 관련된 여정을 그려보았어요. 그 동안 여러 차례 만나면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굴곡, 유산의 경험, 색다른 출산의 기억 등을 꺼내놓을 수 있었어요.출산은 간단하게 '자연'과 '의료'라는 두개의 카테고리로 양극화될 수 없다. 출산을 '완전하게' 혹은 '정상적이게' 혹은 '옳게' 만드는 경험이란 없다. 출산은 일종의 스펙트럼으로, 대다수 사람의 경험은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놓인다. 미국과 한국, 지방의 여성병원과 서울 대학병원 등 여러 곳에서 임신/출산을 경험한 가연은 다양한 출산과 처치 방식을 경험했어요.'몸조리' 문화가 없는 미국에서 미역국 대신 파스타를 먹은 기억도 독특하지요. 모유수유와 출산 방식에 대한 상담을 미리 받을 수 있었던 미국의 산전 케어가 도움이 되었답니다. 세 아이를 모두 다른 방식으로 낳았다는 기린의 경험은 모두를 놀라게 했어요. 서 있는 채로 출산하는 자세는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힘을 줄 수 있어서 아이가 몸 밖으로 나오기 가장 좋은 방식이지요. 모였던 멤버 모두 '누운 자세로 힘 주기'를 강요받았던 것과 크게 다른 경험이에요. 아이가 나온 즉시 탯줄을 자르는 일반 병원에서의 출산과 달리, 자연주의 출산을 한 기린은 탯줄을 한 참 자르지 않고 태반의 영양분이 아이에게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고 해요. 출산시 사용했던 언어도 달랐는데요. 진통이 온다가 아닌 '파도가 온다', 양수가 터졌다가 아닌 '양막이 열렸다' 등 대안적인 언어로 즐거운 출산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평소에 좋아하지 않던 컵라면 등을 임신 기간 내에 수시로 먹었다는 라니. 하필이면 아기를 낳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이삿날이라 혼자서 아이와 함께 퇴원했던 기억이 쓸쓸하게 남았다고 합니다. 오키도 출산 후 스스로 아이와 함께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해야 했던 상황이었는데요.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했던터라 생각보다 수월하게 산후조리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번의 유산을 경험했던 김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아이를 낳았다고 해요. 진통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출산이 임박하자 묻지도 않고 배를 눌러서 아이가 어깨에 상처가 났다고 해요. (아이를 빨리 나오게 하려고 간호사들이 종종 배를 압박하기도 한답니다) 출산을 위해 여러 교육을 받고 박람회도 여러 번 다녔던 프카는 출산은 순조로웠지만, 모유수유가 너무 힘들었다고 해요. 왜 아무도 모유수유의 어려움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요? 셋 째를 출산하고는 우울증도 심해서 아이를 들쳐매고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온라인으로 함께했던 서로서로는 둘 째의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이야기들이 더욱 실질적인 고민으로 다가왔을 거에요. 출산을 준비하면서 ‘대상화’된 느낌이 심하다고 해요. 출산 과정을 미리 설명해주거나 본인에게 동의를 받지 않는 병원이 많기 때문이죠. 둘째를 낳을 병원도 진통을 해서 병원에 갔을 때, 회음부열상주사나 영양제를 맞을 것인지 남편에게 동의서를 받을 거라고 해요. 어쩌면 조금 당황스러운 임신으로 여정을 시작했던 주리는 임신한 채로 이사를 하며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출산 시에도 너무 일찍 입원한 탓에 분만 촉진제를 맞고 기절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잘 나오지 않아서 흡입기를 써서 아이를 빼내는 바람에 아이 머리가 한동안 뾰족했다고 해요. 이거 몰랐는데? 임신/출산 경험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것 같아요. 요즈음은 거의 병원에서 출산을 하기 때문에, 임신/출산에 관한 지식들은 '의료진'에게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당사자여도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과정들이 너무 많지요. 책을 보면서 '엇? 이건 몰랐는데?' 라고 느꼈던 사실들을 짚어봤어요. 우리는 모두 한 때 여성이었다. 안드로겐이라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태아의 남성기와 고환이 발달하는 10주 전에는 모두 여성로 자란다고 해요. 그래서 14주 정도가 되어야 성별을 알 수 있다고 했군요! 등을 대고 누워서 출산하는 자세는 17세기 부터. 누워서 출산하는 자세는 아이와 여성 모두에게 힘든 자세이지요. 17세기 무렵 관음증 환자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출산 장면을 최적의 각도에서 볼 수 있게끔 특수한 관찰 테이블을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선호하게 된 자세래요! 회음부 절개는 '남편용 봉합술'?! 출산을 돕기 위해 회음부 절개를 하는 줄 알았는데, 필수가 아니었어요. 질의 입구를 출산 전보다 더 작고 팽팽하게 만들어서 남편의 성적 쾌락을 높여주기 위한 불필요한 봉합이라고 해요. 태반은 장기 기능을 대신하는 기관. 사실 출산 전까지 태반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출산 후에 태반을 한 번 더 '낳아야'하는데, 그것도 미처 모르곤 하지요. 제대로 된 연구는 없지만, 태반은 임신 내내 태아에게 혈액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 출산 시기를 정하는 '호르몬'을 배출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임신 기간을 꽉 채운 태반은 태아의 혈액을 대략 170그램 품고 있는데... 아기가 엄마 몸밖으로 나오려면 제 몸 안에 그 혈액이 필요하다...자궁이 수축해 태반을 쥐어짜면 혈액이 탯줄의 혈관을 통해 태아에게 들어간다... 자궁이 태반에 압력을 가하면 태반이 오그라들며 태아 체내의 혈액이 점점 증가해 태아는 엄마 몸밖으로 나와 첫 숨을 쉬고... 모유 수유를 하며 역류한 아기 타액으로 맞춤 모유가 생성된다. 엄마의 유두를 통해 아기의 타액이 빨려들어가고 젖샘의 수용기가 타액을 판독하여, 면역계뿐 아니라 감염병에 관한 신호나 정보를 짐작한데요. 이에 맞춰 엄마 몸에 항체를 만들게 하고,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항체를 보냅니다. 임신 중에도 술을 먹어도 괜찮다고? 임신 중에는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이 있어요. 날 생선, 날 계란 부터 카페인 음료까지. 술은 절대 금기시 되는 음식이죠. 그런데, 다량의 알코올 섭취가 태아에게 신체 기형이나 지적 장애를 일으킨다는 '태아알코올증후군'은 1973년에 만들어진 용어라고 합니다. 이전 몇 세기 동안은 조기분만을 늦추기 위해 알코올을 임산부 정맥에 주입하기까지 했다네요! 광범위하게 인정되던 데이터와 조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각자의 상황에 맞춰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예요. 우울증 약, 피부과 약 등 약물 등의 섭취도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피부과약을 먹고 있었는데, 임신을 해서 임신중단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약을 먹고 있어서 걱정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아기에게 악영향을 미칠 거라는 걱정 때문이에요. 우울증을 겪는 산모들도 억지로 약을 끊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약을 먹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이 더 좋데요. 여전히 불가사의한 것들 출산 전 소위 '굴욕 3종세트(관장, 제모, 소변줄)'를 받아요. 출산시 감염의 위험 때문에 질 주변의 체모를 제거하고, 관장으로 변을 빼내고, 소변줄을 달아 소변을 빼는 처치이지요. 그런데 꼭 해야하는 것일까요?!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에는 도대체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 것일까요? 양수의 양은 왜 측정하는 것일까요? 듣기로는 태아가 양수를 섭취하고 배출하는 능력이 뇌 기능 발달과도 연관된다고 하는데요. 확실히 모르겠어요. ** 검사들은 꼭 해야 하는 것일까요? 태동검사, 기형아 검사, 당뇨검사 등등 임신 전기에 걸쳐 권유되는 검사들이 많지요. 초음파를 반드시 해야 할까요? 나라마다, 병원마다 초음파를 보는 횟수도 차이가 나요. 유독 한국 병원에서는 3D 초음파까지 권유하는데요. 꼭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장사속일까요? 내가 들었던 최악/최고의 어록임신/출산을 겪으며 이런저런 우려섞인 말들로 간섭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내 몸이지만, 내가 오롯이 결정내릴 수 없는 시기이지요. 각자가 들었던 말 중에서 힘이 되었던 말 혹은 상처가 되었던 말들을 적어봤어요. 유산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시선들이 많아요. 유산을 세 번 경험한 나무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들에 상처를 받은 경험이 많다고 해요.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아이가 하나밖에 없어요?’, ‘둘째는 언제 낳아요?’, ‘동생 얼른 낳아줘야지’... 심지어는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스쳐가는 사람들에게 조차 이러한 질문을 듣는다. 그들에게는 어색함을 무마하려는 상투적인 질문일 지 모르나 나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 나무책의 저자 안젤라도 유산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유산은 여성의 25% 가량이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억지로 유산의 경험을 위로하거나 거기에 조언하는 것보다 공감을 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짚어내요. 환자가 유산에서 회복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중요하다. 다시 임신을 하게 될 거라거나 임신을 원하게 될 거라는 위로가 아니라 말이다. "애국자네~" "하나 더 낳아" 아이 셋을 키우는 사람들은 종종 '애국자'라는 말을 듣게 되죠. 아이를 낳은 것이 애국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도요. 혹은 아이를 하나를 키우는 사람들은 '하나 더 낳아'라는 말을 들어요. 각자의 상황이 모두 다른데도, 개인의 영역을 불쑥 침입하는 말들이죠. 도움이 되는 말들은 이런 것들이에요. "니 잘못이 아니야" 유산을 한 것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에요. 음식을 잘못 먹었다던가, 내가 몸을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지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다만, 만나지 못한 생명을 충분히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될거에요. "니가 편한대로 해" 산후에 샤워를 해야할까 말아야 할까, 산후 마사지를 반드시 받아야 할까, 회를 먹어도 될까, 모유수유는 반드시 해야할까, 아이를 위해 동화책 전집을 사야할까... 등등. 임신/출산을 겪는 여성에게 반드시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이 권유되지요. 이렇게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가장 좋은 결정은 내가 편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요? "왜 그렇게 힘들었어" 남편의 잦은 출장으로 독박육아로 아이을 키운 김치에게 이 한마디가 매우 힘이 되었데요. '왜 그렇게 했어'라는 말 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힘이되는 말은 '힘들지'라는 위로의 한마디일 거에요. 키워드 중심으로 큰 종이에 적으면서 나눈 육아모임의 대화들 가장 필요한 도움-정말 중요한 건, 어떻게 아이를 낳느냐가 아닙니다. 아이을 낳는 과정에서 어떻게 돌봄을 받느냐죠.-산후에는 과식과 식욕부진, 불면증이나 과도한 수면 등 다양한 증상을 겪어요. 게다가 아이와 단둘이 남겨진 것 같은 고립감이 산후 몇 달간 심각하게 발생하지요.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기이고요. 감정적으로나 호르몬적으로나 엉망진창인 시기예요. "일련의 출산과정, 출산 후에 돌봄을 받은 방식이 여성에게 강력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해요. 임신/출산 경험을 나누면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빈틈은 홀로 그 과정을 겪을 때 느껴지는 외로움과 고립감이었어요. 라니는 비슷하게 아이를 낳은 친구와 밤중 수유를 하며 카톡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해요. 프카는 첫째 아이 어린이집 엄마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고 하고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냥 사람이에요. 대단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사람이요.책에 나온 말처럼,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냥 사람' 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데에 모두 동감했어요. 엄마가 되는 것은 이전에는 몰랐던 세계로 들어가는 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경험을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우울감과 상실감을 겪기도 하니까요.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아주 잘난 사람'이 되기 보다 '그럭저럭 잘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이전에는 고려하지도 않았을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아둥바둥하기도 해요. 아기를 낳고서는 고만고만한 일만 하고 있어. 그 상황이 너무 싫어.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럭저럭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나를 정말 힘들게 해." ... 우리는 왜 부모에게 이런 현실을 대비시키지 않는 걸까? 왜 부모가 되는 일에는 크나큰 기쁨이 있지만 동시에 육아가 사람을 녹초로 만들고 때로는 우울하게 만든다는 걸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을까? 우리가 새로운 삶을 얻지만 동시에 예전의 삶을 잃게 된다는 걸 왜 툭 터놓지 않을까?아마도 평생 끝나지 않을 여정을 서로 다르게 걸어가는 양육자들이 이런 순간마다 여러 고민의 결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 혹은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서로서로는 덴마크의 사례를 공유해주었어요. 덴마크에서는 행정구역별로 갓 출산한 사람들을 5~6명씩 짝을 지어준다고 해요. 한국에서 '산후 조리원 동기(일명 조동모임)' 들이 모임을 이어가는 것과 비슷하지만, 정부에서 산후관리의 차원에서 양육자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차이가 있겠지요. 모임 말미에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나 딸로 이루어진 가족'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도 바뀌어야 할 때라는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정부의 출산지원금이나 양육지원금등이 이러한 '정상가족'에만 제한된 것도 차별적인 구조로 인식해야 마땅할테구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이들이 기존과 다른 형태의 가족으로 살아갈 때, 정부의 정책들이나 우리 사회의 문화가 차별로 다가오지 않아야 할테니까요. 육아와 평화가 만나는 지점이 다양해질 수 있도록, 여러 방식으로 소통하고 고민해야겠습니다. *o:WOW는?육아를 하며 평화를 고민하는 피스모모 회원들의 모임입니다. 여성 양육자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시작했지만, 양육자로 살아가는 모든 회원 분들에게 열려있답니다.양육자이자 피스빌더로서의 정체성이 교차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찾아가고자 해요.